눈 깜짝할 사이에.
✱나이 팔십이 무슨 대수라고 이렇게 증감원우회(證監院友會)에서 80세의 조세(肇歲)를 축하해주시고 기념품까지 주시니, 우선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만 같은데 이제 나이 팔십이 돼버렸습니다만, 보릿고개를 어렵사리 넘기던 소싯적에는 환갑을 넘겨 살게 될 거라는 생각을 갖기 어려웠으니 말입니다.
그동안 세상은 많이 변했고 인간의 수명은 길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문명의 대변혁기에 특히 아날로그시대에서 디지털시대로의 변화에 제대로 적응치 못해 전형적인 구세대(舊世代)의 일원으로 치부돼있기도 합니다.
✱1977년 2월, 나이 38세에 새로 발족한 증권감독원의 검사부장 발령을 받던 것으로 우리의 직연(職緣)이 시작됐으니 그 인연도 이제 41년의 세월을 헤아리게 됐습니다.
38세에서 51세에 이르는 13년이라는 감독원 재직기간은 저의 생애(生涯)에서 여러모로 황금기였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다방면의 지적탐구와 맡은바 직무수행에 매진했어야 할 중장년시절을 이것저것 여기저기에 한눈파느라고 너무 허송세월(虛送歲月)하며 보냈다는 후회스러움과 아쉬움이 크다 하겠습니다(잦은 轉職으로 龍이 못된 이무기, 잠룡).
서권기(書卷氣) 문자향(文字香)이 배어나는 인문학적 소양의 강단(剛斷) 있는 지식인(知識人)의 삶을 꿈꾸었지만 이도저도 아닌 어정뱅이가 돼있습니다(속물적인 好事家, 딜레탕트).
✱하지만, 오늘 이 자리를 함께하신 여러 선후배님들과 아름다운 인연(因緣)을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다는 게 제 인생에서 얼마나 보람되고 행복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80세 이후의 삶…중수(中壽: 80세~99세).
✱이제, 하고 싶은 일들은 많은데도 이미 기력(氣力)은 쇠하고 여명(餘命)도 가늠하기 어려운 일모도원(日暮途遠), 신로심불로(身老心不老), 노년4고(無爲苦.孤獨苦.病苦.貧苦)라는 안타깝고도 애잔한 생존조건(生存條件)에 내몰린 시기가 됐습니다.
✱외부지향(外部志向)의 습성에서 벗어나 내면지향(內面志向)의 사유(思惟)와 자기성찰이 어느 때보다 치열해야할 시기라고도 생각합니다.
✱“사람을 보려면 그 후반부(後半部) 생애를 보라”고 하는 채근담(菜根潭)의 경구(警句)를 몸소 체현해야 할 시기인 것입니다.
세상이 바르지 못함을 한탄하면서도 부끄럽게 살아야했던 기왕(旣往)의 삶을 치유(治癒)하고 이웃과 화해(和解)하며 매사(每事)를 갈무리하여 유종(有終의 미(美)를 이뤄야 할 시기이기도 합니다.
회자정리.생자필멸(會者定離.生者必滅)이라 하듯 유한(有限)이라는 숙명(宿命)과 맞닥뜨리는데 익숙해져 나름대로의 고종명(考終命:Well-dying)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입니다(『열반경』).
✱인간의 수명이 100세시대로 접어들었다 하나, 아직은 요행히 선택된 존재라야 상수(上壽;100세 이후)를 맞게 될 거라 하니 저로서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이라 할까요?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76세를 일기로 사망하자(2018년3월14일), 세인(世人)들은 그가 하나의 별이 되어 우주(宇宙)로 돌아갔을 거라고 그의 삶과 연계시켜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우리라는 존재(存在)들은 다음에 뭐가 되어 어디에서 다시 만나게 될까요?
✱저는 언제부터던가 골똘히 생각을 해 왔습니다. 어지간하면 후배(後輩)들에게 부담을 주는 모임에 끼어드는 기회를 줄이는 게 선배(先輩)로서 사려있는 처신이지 않을까라고….
67년 전에(1951년4월11일) 더글러스 맥아더장군이 미국의회상하원합동회의의 고별연설(告別演說)에서 인용했던 군가(軍歌) 후렴구를 이 자리에서 상기해 봅니다.
“노병(老兵)은 죽지 않고, 단지 살아질 뿐이다(Old soldiers never die ; they just fade away).”
이를 우리의 현실에서 번안(飜案)한다면 “선배(先輩)들은 죽지 않고, 다만 살아져 줄 뿐이다. 숱한 기억들을 남기고.”
✱친애하는 증감원우회 선후배 여러분! 앞으로의 노후여정(老後旅程)에 강녕(康寧)과 행운(幸運)이 늘 함께 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2018년 4월 6일(음2월21일). 燧石(부싯돌) 金幸民 드림.